무궁화호 열차. ⓒ에이블뉴스DB
코레일에는 장애인 승객을 위한 응대 매뉴얼이 있다. 친절하게 하라는 내용과 어떻게 승차를 도와주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매뉴얼은 열 가지 문장으로 되어 있다.
① 승차도우미 신청을 위해 방문한 고객에게 맞이 인사를 합니다.
② 밝은 표정으로 경청하며 아래 내용을 확인하여 신청서 작성을 돕습니다.
- 고객정보(성명, 연락처, 장애유형) 및 열차정보(도착역, 출도착시각, 열차번호, 좌석번호)
③ 정중한 태도로 작성한 신청서 내용을 확인합니다.
④ 눈맞춤과 밝은 미소로 마무리인사를 합니다.(대기공간이 있을 경우, 대기공간으로 안내합니다.)
“고객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⑤ 승차도우미(사회복무요원 포함), 열차승무원(열차팀장, 여객전무)에게 교통약자 승차정보를 전달합니다.
⑥ 승차도우미는 열차시간에 맞춰 교통약자고객을 열차(좌석)까지 안내합니다.
- 시발역의 경우, 좌석까지 고객을 안내해드립니다.
- 중간 정차역에서는 열차에 승차하는 것까지 도움을 드리고 열차승무원에게 인계합니다.
※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⑦ 휠체어고객의 경우, 열차시간에 맞춰 휠체어리프트를 준비합니다.
⑧ 열차승무원에게 교통약자 고객을 인계하고 관련정보(목적지, 장애유형 등)를 전달합니다.
⑨ 역운영시스템에 장애인 도우미 기록부를 입력합니다.
- 역운영시스템 ➞ 기록부 ➞ (출발)도우미기록부 클릭
- 교통약자 고객 정보 입력
- 승차도우미 정보 입력
- 비고 입력 후 저장
⑩ 도착역에 교통약자 고객의 정보(성명, 연락처, 장애유형, 인원 등)와 열차정보(열차번호, 좌석번호 등) 및 특이사항을 통보합니다.
매뉴얼은 ‘도와주는’ 입장이다. 도움을 신청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장애유형에 대한 내용이나 장애인에 대한 에티켓이나 응대의 구체적 방법은 없다. 화장실이나 부대시설 이용에 대한 내용도 없고, 승하차를 위한 단계적 이동경로 상의 응대법이 나와 있지 않다.
항공사들의 장애인에 대한 응대 매뉴얼은 예약 사이트 접근성부터 사후 관리까지, 심지어 휠체어 고장시의 대응까지 담고 있으며, 용어 사용이나 공항 도착에서 공항을 나서는 전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돕는다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지난 15일 토요일 오전 11시 38분 수원역에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려던 한 장애인이 승차를 거부당했다. 주말이라 입석 승객이 많아 휠체어 장애인을 태우려면 힘들겠다고 판단한 승무원이 승차를 거부한 것이다. 차량은 3량이고 승객 수는 400명 정도로 입석 최대한도의 80%를 채운 상태였다.(입석 188명)
이 장애인은 예약을 했고, 리프트 신청을 했음에도 기차를 타지 못했음에 마음이 상했다. 다음 기차를 타자 30분이나 늦게 서울에 도착했으니 그날 일정은 엉망이 되었다. 코레일 측은 승객이 많아 어쩔 수 없었으며, 다음 열차를 타도록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고 해명 보도자료를 냈다.
코레일은 이번은 언론이 상대라 그래도 점잖게 처리한 셈이다. 다른 사례들을 보면, 거세게 항의하는 장애인들을 업무방해와 난동꾼으로 몰아 형사 처벌한 사례까지 있으니 말이다.
제시간의 열차를 타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승차 도우미가 매뉴얼을 어기고 승무원에게 사전에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승무원 입장에서는 갑자기 장애인 승객이 나타났으니 다른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마련하거나 리프트를 설치하여 탑승하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다.
코레일은 장애인이 승차를 거부당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불을 끄기 위해 해명보도자료를 냈고, 이 해명자료를 보고 언론들은 다음 기차를 타도록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자 누리꾼들은 댓글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다음 열차를 이용하도록 안내를 해주었으면 고마운 줄을 알아야지, 오히려 원망을 하다니 장애인에게 잘 해 주어봤자 소용이 없다며 장애인을 사회에 폐를 끼치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승차도우미는 오히려 상을 주어야 할 사람이라고도 했다. ‘장애인 놈들은 너무한다, 장애가 벼슬이냐’는 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장애인을 매도했다.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고 하였는데, 승차를 하지 못하자 승차도우미는 장애인을 승강장에 내버려 두고 그냥 가려고 했고, 장애인이 다음 열차라도 타야 한다고 매달리자 다음 열차를 타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열차를 타지 못한 점, 그리고 제대로 다음 열차 안내를 자진해서 해 주지 않은 점, 그리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는 거짓말 보도자료, 이렇게 코레일은 장애인을 세 번 울렸다.
승차도우미는 처음에는 승무원에게 연락을 했는데 복잡해서 못 탄 것이라고 손님 탓을 했고, 그 다음에는 승무원이 거부하니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을 했다. 연락한 시간과 근거 자료를 요구하자 그제서야 연락을 하지 않아도 승차장에 나가면 탈 것 같아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승차를 거부당한 이유는 응대 매뉴얼이 너무나 조잡하고 엉성하다는 것이고, 승차도우미가 안일했으며, 코레일이 역무원에 대해 교육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코레일은 그 잘못을 시인하고 진정한 사과를 해야 했다. 하지만 사과보도문은 정말 명문장이었다. 타지 못한 점에 사과한다. 하지만 코레일 잘못은 없었다는 것이 골자다. 사과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듯하다. 잘못을 인정하여야 진정한 사과이다. 그리고 반성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하지만 사과를 하는 보도자료는 거짓말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코레일의 처리 과정을 따지자 이제는 한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그 역무원을 징계하는 것으로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주말처럼 복잡한 날에는 장애인석을 줄이는 등의 조치를 하도록 안전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누리꾼들은 평일 한가한 날에 이동하면 되지, 왜 장애인들은 복잡한 주말에 돌아다니느냐는 말을 한다. 그런 편하고 좋은 날은 악플 누리꾼들이나 이용했으면 좋겠다.
코레일은 누리꾼들이 한 말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애인이 드세고 코레일은 장애인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해명자료를 내었기 때문에 그 태도가 누리꾼들에게 전염이 된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대책회의를 하고 잘못은 숨기고 상대를 호도하는 태도는 참으로 공무원 사회에서 자주 접해 국민들은 익숙해져 있다. 권력 앞에 약지의 인권이 도전적 행동으로 인식되는 과정이 바로 이런 가식적 해명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혼잡한 주말에 3량을 운행한 것이 잘못이고, 응대 매뉴얼이 장애인에 대한 구체적 이해 지식과 행동요령을 단지 못한 것이 잘못이고,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 해명하고 덮으려는 태도가 잘못이다. 이러한 상부의 업무처리가 말단 고객부서에서는 차별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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