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국회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 마련 토론회’에서 발표 중인 박경인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에이블뉴스
태어나서부터 시설에서 살다 23살에 자립한 발달장애인 박경인(30세, 여)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자립생활 시작부터 높은 벽에 부딪혔다. 정부 시행 정책자료와 서류 속 내용이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임대, 보증금, 소득자산…’.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아니어서 이해하기 어려움이 많이 생깁니다.”
은행 ATM기에서 돈을 뽑기도 어렵다. ‘예금, 출금, 계좌 송금’. 그냥 ‘돈 뽑기, 돈 보내기’ 등과 같은 쉬운 단어 그림이 있다면, 나 혼자도 은행에 갈 수 있을 텐데. 가끔 주민센터에서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라고 연락이 와서 가면, 어떤 서비스인지 자세한 설명도 없이 싸인하라는 말에 고민이 많다고.
박 활동가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 마련 토론회’에서 이같이 힘주어 말했다.
“왜 우리나라는 발달장애인법에 이해하기 쉬운 자료를 만들라고 적혀 있음에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런 것도 만들지 않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발달장애인도 국민으로서 자신이 이용할 복지와 정부 정책에 알 권리가 있습니다!”
‘복잡한 은행 업무를 쉽게 설명해주면 좋을 텐데’, 박경인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가 제안한 쉬운 자료 내용.ⓒ에이블뉴스
2015년 시행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 제10조 의사소통 지원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해 배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박 활동가의 사례처럼 많은 정부 정책자료들이 발달장애인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박 활동가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시행령을 정하고 이해하기 쉬운 자료에 대한 기준이 생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에이블뉴스
이 같은 정보접근권 부재 문제는 장애인 스마트폰 개통 사기 피해, 참정권 배제 등으로까지 이어진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김성연 사무국장은 “인지의 어려움이 없는 사람도 요금제를 명확히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데, 다수의 발달장애인이 피해자가 되고 있다”면서 “발달장애인에 맞춘 정보제공자료가 전혀 없고 설명과정도 없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복합적인 형태의 계약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김 사무국장 또한 발달장애인의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위해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사무국장은 “편의시설이 이동이나 시설접근에 어려움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리한 시설물이 되어주듯, 발달장애인을 고려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는 결국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지에 어려움이 있는 모든 사람의 일상에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주요한 편의 제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대표도 "발달장애인법,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법적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법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은 이제 지나간 세월 같다"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처럼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읽기 쉬운 자료 제공이 기본적인 사회가 돼야 한다. 선택이 아닌 필수며, 국가 지자체가 당연히 해야 할 몫"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중부대학교 특수교육과 김기룡 교수가 13일 국회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 마련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에이블뉴스
그렇다면 당장 어떻게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정보자료 개발을 추진해야 할까?
중부대학교 특수교육과 김기룡 교수는 우선 현행 법령에 따라 발달장애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정보를 중심으로 자료를 개발해야 한다고 짚었다. 동시에 보건복지부 등 주요 정부기관의 책무 강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복지부: 장애 관련 법령 및 법규 자료, 장애인 정책 및 사업 안내 자료, 고용 복지 정보 콘텐츠 ▲선거관리위원회: 선거 안내 자료, 선거입후보자 공보물, 투표용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안내 자료, 진정 결과 후속 조치 자료 ▲읍면동 주민센터: 민원 신청 안내 자료, 각종 행정 정보자료 등 발달장애인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정보 범위를 제안했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한 국가 수준의 ‘읽기쉬운자료 개발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읽기 쉬운 자료는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정보접근수준으로 확대해야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13일 국회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 마련 토론회’ 전경.ⓒ에이블뉴스
한편, 이 같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 필요성 목소리에 보건복지부 또한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백경순 과장은 "평생돌봄강화대책을 수립했고, 2018년 80억원에서 2500억원으로 관련 예산도 늘어났다"면서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필요한 정보를 파악해 쉬운 자료로 제작 배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읽기 쉬운 문서 만들기 안내서 등을 만들어 정책 정보 제공 등에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달장애인법에 따라 이해하기 쉬운 자료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달라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고민해나가야 하는 시점"이라면서 "내부적으로 논의해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을 파악하고, 좀 더 쉽게 정보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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