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서 주시한 대한민국 인권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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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10-04 11:20본문
유엔 고문방지위원회 제6차 대한민국 심의 최종견해 발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권고이행 촉구 국회∙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 모습. ⓒ서미화 의원 페이스북
제작년에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2·3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내렸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엔 고문방지위원회(Committee against Torture, CAT)와 여성차별철폐위원회(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보고서를 심의했다. 이들 위원회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최종견해도 내려졌다.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최종견해와 관련해선 이후에 말하겠다.
올해 7월 8일~26일까지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서 제80차 회의가 있었고 이 가운데는 대한민국 정부심의도 포함됐다. 전국탈시설 장애인 연대 박경인 공동대표와 부산 집단수용시설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 손석주 대표를 비롯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26개 시민단체 등으로 이루어진 한국시민사회모임이 제네바에서 정부심의에 대응했다.
본심의 전에는 시설수용과 관련해 국가로부터 사과받지 못한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포함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전국탈시설 장애인 연대 박경인 공동대표는 좋은 시설이라고 하는 그룹홈에서조차 끔찍한 학대를 당했고 그곳의 직원은 그 사실을 밖에서 말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등 시설에서의 삶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폭력이지만, 한국 사회는 이를 폭력이라 보지 않는다면서, 모두가 시설 밖에서 살면 좋겠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부산 집단수용시설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 손석주 대표는 1950~1970년대까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수용한 영화숙·재생원이란 시설에 대해 말하며, 그곳에 수용된 피해자들 대부분은 아동이었고, 이들은 행색이 남루하단 이유로 수용되었단다. 물리적 폭행, 성폭행 등 각종 가혹행위가 그곳엔 비일비재했고, 자신은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았다고 말했다.
1960년에 내부고발 있었지만, 정부는 침묵했고, 1970년대에 한 번 더 고발하며, 원장이 구속됐지만, 정부는 아동 보호보단 다른 시설로의 전원 조치를 취했단다. 이후 여전히 피해 생존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으며, 정부는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안 했단다. 손 대표 자신은 시설 생활 후 사회에 돌아가도 갈 곳이 없었고, 필요한 시기에 교육을 받지 못해, 삶은 비참했다고 증언하며, 자신의 삶이 끝나기 전 국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고, 사과와 보상을 받고 싶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이어서 이들은 고문방지위원회의 대한민국 국가보고관인 아나 라쿠 위원과 피터 베델 케싱 위원에게 시설수용의 해악을 알리며, 다시금 시설수용 자체가 고문방지협약 위반이고, 시설에 수용된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마땅히 사과와 보상을 받아야 함을 거듭 언급했다. 아울러 시설에 대한 인권위의 불시 방문을 주문했고, 위원들은 이에 긍정적으로 수긍했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 제6차 대한민국 정부 심의장 전경. ⓒUNWebtv 동영상 캡처
이후 정부심의가 있었는데, 케싱 위원은 시설수용 피해자들의 구제받을 권리 보장에 대해 질의했다. 다른 위원들은 구금시설 과밀수용, 열악한 의료환경, 사형제 폐지, 경찰의 가혹행위, 군대 내 인권침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권 및 독립성, 정신질환자 거주시설 구금, 인신매매 등에 대해 질의했다.
질의에 대해 정부는 ‘과밀수용 즉각 개선 어렵다’, ‘시설 감독은 국가인권위원회 방문 조사로 충분하다’, ‘시설수용 가해자 처벌은 일반적 절차로 충분하다’는 등으로 답변하며, 변명에만 급급했다. 이런 대답을 들은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과거 국가폭력과 시설수용으로 피해받은 사람들의 구제받을 권리 보장 ▲심리사회적 장애인의 비자의 입원 규제조치 마련 ▲교도소 및 기타 구금시설의 과밀화 줄이기 조치 ▲자유 박탈 장소 등에 대한 인권위의 예고 없는 접근 및 방문 권한 부여 등을 최종견해에 권고로 담았다.
2년 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시설수용은 감금이자 고문임을 분명히 했는데, 이번 고문방지위원회도 최종견해에서 그 입장을 재확인하며, 시설수용 피해자들의 구제받을 권리 보장을 권고로 내린 거다. 하지만, 권고 전 진실화해위원회의 김광동 위원장은 수용시설 직권조사 계획이 없음은 물론 시설수용을 인권침해·유린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을 생각하면 위원장의 인권 감수성은 거의 낙제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더군다나 시설수용 피해자 중 극소수만이 배상받으며, 진실화해위원회가 인력 부족 등으로 내년 5월에 종료되는 현실이라니 나머지 피해자들이 어디서 구제받을지 걱정된다는 손석주 대표의 발언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장애가 있는 사람들 등을 지원하기보단 시설은 선택이란 핑계로 탈시설에 제동을 걸고, 시설 위주의 정책을 펴는 걸 생각하면, 장애인 등의 시설수용 피해에 대한 배상은 더욱 요원해지지 않을까도 우려된다.
과거의 인권유린을 사실상 덮게 되는 것은 범죄다. 그리고 과거의 인권침해·유린 사례 규명이 사실관계 파악의 어려움으로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시설수용 인권침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선 사실상 한시적인 진실화해위원회보다 권한이 강화된 상설기구의 설립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하겠다.
아울러 돈으로만 배상하고 그만한다는 태도를 버리고, 국가는 시설수용 피해자들의 삶의 관점에서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진심으로 사죄하며,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고, 시설수용의 역사와 해악에 대해 가르치는 기념사업 등을 해야 할 것이다. 진상규명 시 피해자들로부터 진술을 모을 때는 진술의 신빙성보다 이들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등의 트라우마 인지적인 방법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럴 때 진상규명을 통해 이들의 존엄성은 회복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주최한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해외동향과 한국의 과제’ 토론회 모습. ⓒ이원무
구체적 권고 내용으론 국내법 개정 등으로 사회복지시설, 고아원, 폐쇄형 시설 등에 수용되었던 모든 피해자들이 공식적 진정 제기 없이도 보상, 만족, 재활 서비스를 포함한 효과적 구제·배상을 받도록 보장하라는 내용 등이 있었다.
심리사회적 장애인의 비자의 입원과 관련해선 자·타해 위협을 하지 않는 다수의 정신 및 심리사회적 장애인이 비자발적으로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하고 있고, 동의입원 제도에 따라 입원했다, 법정 보호자 동의 없이 퇴원 신청으로 ‘법정 보호자에 의한 입원’으로 신분이 변경된 후 퇴원이 거부됐다는 보고에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또한, 입원을 검토하는 기관의 독립성, 공정성 및 자원이 부족하고, 환자 대면 면담 없이 사례 대부분이 결정되는 관행에도 우려를 표했다.
참고로 ‘동의입원’은 입원 시엔 자발적으로 입원해도, 퇴원 희망 시 보호자의 동의가 필수이고, 치료의 필요성이 있다고 의사가 인정하면 72시간 동안 당사자의 퇴원 의사를 거부하게 되며, 보호자 동의 시 보호 입원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되면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사실상의 비자의입원이며, 심리사회적 장애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거다.
입원을 검토하는 기관인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운영 주체는 국립정신병원이라 독립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고, 심사 시 의사결정 지원이 없고, 위원회 결정에 불복할 수 없음은 물론 대면심사가 미보장된다. 그러기에 비자의적 입원을 규제하는 법률 개정 고려, 동의입원 제도 개정과 입원 심사 시 대면심사 의무화, 정신의료기관 내 장애인을 위해 비밀이 보장되고 효과적·독립적이며 접근 가능한 불만 제기 메커니즘 구축 등의 권고를 고문방지위원회에서 내린 거다.
필자 생각엔 동의입원을 포함한 모든 비자의적 입원 규제 차원을 넘어 폐지하라고 함은 물론 심리사회적 장애인들이 급성기를 경험할 때 오픈 다이얼로그, 고조완화기법 등의 비강압적 방법 마련으로 이들의 강제입원을 막는 조치를 취하라는 권고를 내렸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말이다.
교도소 및 기타 구금시설의 과밀화와 관련해선 전국 교도소의 수용률이 작년 기준 113%에 이른 것 등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이들 시설의 지속적인 인프라 개발 및 개조 계획 등 과밀화를 줄이기 위한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교도소와 기타 구금시설이 과밀화되면 자신만의 공간이 줄어들어 사생활 침해가 우려됨은 물론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피할 수 없거나, 수면도 취하기 어려운 등 수용자·수형자들의 스트레스 증가를 야기하지 않겠는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2년 전 6월 23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 법무부가 잘못된 치료감호 종료 결정으로 정신장애인을 사망케 했다고 규탄하고 법무부장관을 대상으로 인권위에 치료감호소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진정을 제기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더군다나 치료감호소의 경우엔 치료로 호전되지 않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장애 치료란 목적으로 해당 형기보다 길게 최장 15년까지 구금시키는데, 그곳의 과밀상태는 심각하다. 구금된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엔 사생활 미보장될 여지는 농후하니, 스트레스 증가로 자·타해 행동 등이 발생할 여지가 많다. 그러니 치료감호소 등 구금시설의 과밀화를 줄이는 건 장애인 수용자·수형자에게도 꼭 필요하다. 물론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치료감호소에 수용됐으면 즉시 석방하고, 이들이 치료감호 대상이 되지 않게 치료감호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자유 박탈 등에 대한 인권위의 예고 없는 접근과 방문 권한이 없다고 고문방지위원회가 우려하며, 이 권한을 인권위에 부여하라고 권고한 것도 주목할만하다. 왜냐면, 장애인 거주시설 폭력의 경우, 피해 장애인과 가해자 간의 위계관계에, 시설의 폐쇄성으로 인해 시설 폭력이 은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피해 장애인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엔 더욱 시설 폭력의 진실이 은폐되기 쉽다.
그러기에 이런 경우 진정하지 않아도 인권위에 불시 방문 권한을 주는 건 필요하다 할 것이다. 2년 전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이 이뤄졌으니, 선택의정서의 직권조사(개인이 진정하지 않아도 시설 인권침해 등 중대한 인권침해로 협약을 위반하는 경우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직권조사하는 것)를 통한 방법으로 시설수용 인권유린에 대한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들의 당사국 방문 조사가 이뤄지게끔 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외에도 ‘반정부단체’와 이들의 활동에 대한 ‘찬양’ 및 ‘고무’에 대한 국가보안법 제7조의 모호한 표현에 의해 자의적으로 체포·구금된 사례들에 우려를 표하며, 고문방지위원회는 이 조항을 개정 또는 폐지해, 체포·구금이 당사국 인권 의무에 부합하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이 위원회에선 당사국이 사형제 모라토라움(일시적 유예)을 인지하지만, 법원이 계속 사형을 선고하며, 상당수의 사형수가 남아있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에 사형제 모라토리움 유지 및 사형제 폐지 고려 등의 내용을 최종견해에 담았다.
이렇게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시설수용, 정신병원 강제입원, 구금시설 과밀화, 국가보안법 등으로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등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현황을 주시하며 최종견해를 냈다. 최종견해가 나온 후, 장애인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은 대한민국 정부에 권고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했다. 그동안 권고 미이행을 밥 먹듯이 한 국가가 이제는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장애인단체와 시민사회의 보다 강력한 모니터링이 필요할 때이다. 모든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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