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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식민지 근대화론과 정신적 장애인 인권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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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8-3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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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 논리인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관되는 일제강점기 당시 철도 건설 모습. ⓒMBC News Youtube 동영상 캡처 

허구 논리인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관되는 일제강점기 당시 철도 건설 모습. ⓒMBC News Youtube 동영상 캡처
올해 독립기념관과 관련해 말들이 많다. 이번 달 6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역사와미래’ 김형석 이사장을 제13대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난 8월 12일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김형석 신임 관장은 자신의 저서에 “백선엽 장군은 친일파란 불명예를 쓰고 별세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한 타결은 상당한 성과였다.”라는 말을 남겼단다. (출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예산도 비판 목소리, 오마이뉴스 2024년 8월 12일 기사)

백선엽은 만주지역 항일 무장단체 토벌을 위한 대표적 친일단체인 간도특설대에 복무하며, 독립운동 탄압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 시절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안 타결은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전범국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가 담겨 있지 않아 우리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았었다.

김형석 신임 관장이 자신의 저서에 그렇게 써놓은 걸 보면, 그에게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인식을 보게 된다. 물론 그 자신은 식민지배를 옹호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백선엽이 친일파라는 건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그렇게 말한 것을 보면 그의 항변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렇게 친일 입장을 내비친 사람이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는 건 물론, 우리나라의 자주독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 독립기념관인데, 그런 성격과는 거리가 먼 김형석 씨의 독립기념관장 선임이 말이 되냐는 거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런 어이없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올해 2월 당시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한 낙성대경제연구소 박이택 소장이 독립기념관 이사에 선임되었다. 그는 선임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이뤄진 쌀 수탈에 대해 “가격을 받고 판매하는 건 수탈이 아닌 수출”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일제강점기가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 됐으며, 조선인의 삶의 질이 증진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독립기념관 전경. ⓒWikipedia독립기념관 전경. ⓒWikipedia
그런데, 이는 허구임이 당연하다. 당시 토지·자본 등은 일본인 소수의 집중소유 상태에 있었고, 일본인은 광공업 자산 90% 이상을 소유하는 등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소득 불평등은 심했다. 또한, 1918~1945년까지 영양 공급량이 감소 경향을 보면 소득 증가란 명제는 어불성설이다(출처: 식민지 근대화론은 ‘불편한 진실’ 아닌 ‘불편한 허구’다, 한겨레 2019년 10월 19일 기사).

왜냐면 조선인의 소득이 낮고 당시엔 배가 고팠던 시절이라, 소득이 늘어난다면 영양 공급량은 증가해야 맞지 않겠는가? 하지만 감소 경향이니 소득 증가 통한 삶의 질 증진이란 명제는 성립 안 되고 식민지 근대화론 자체가 허구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같은 시간 일해도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임금이 적기도 했고, 심지어 철도 건설할 때 조선인에게 일을 시키곤 돈도 주지 않았다.

철도 등이 확충됐으니 근대화에 기여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이건 조선의 곡물, 곡식과 자원 수탈을 위한 통로로 이용됐을 뿐이다. 더군다나 전쟁 치르는 와중에 조선인은 재산 몰수, 강제징용과 위안부 인권유린 등의 고통을 겪었고, 신사참배, 창씨개명 강요를 당하는 등 문화적으로 말살당했다. 입법, 사법, 행정에서도 조선총독부가 장악했다. 그러니 일본강점기 때 근대화를 이뤘으니 일본에게 감사하라는 뉘앙스가 담긴 식민지 근대화론은 여러모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식민지 근대화론과 비슷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있다. 시각장애인과 지적장애인 2명이 극적으로 탈출하는 염전노예 사건이 10년 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염전에서 일하던 장애인들은 10년 넘게 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염전주 등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법원이 처음엔 가해자에게 실행을 선고했다.

하지만, 돈 안 주고 폭행하는 것은 지역관행인데, 왜 나만 처벌하냐며 억울하다고 밝히는 염전업주가 있었다. 그리고 염전업주 등의 가해자들은 갈 곳 없는 장애인들을 먹여주고 재워주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해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법원은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장애인들을 먹여주고 재워줬으니, 가해자인 염전 업주에게 감사하라는 식인데, 과연 그럴까? 장애인들은 10여~20여 년 동안 폭언과 폭행을 들으며 자신의 노동 대가에 대해 한 푼도 받지 못했으니 자신의 자존감은 물론이고 존엄성까지 처참히 무너지며 말살당한 기분이었을 거다.

더군다나 염전노예 피해자들의 대다수는 지적장애인이었으며, 지역사회의 자립지원체계가 미비하기에 염전에서 나온 후 다시 염전으로 돌아간 장애인들이 절반을 넘고, 염전에서의 재학대 위험성은 상당히 높다. 물론 2019년 염전노예 사건이 국가 배상책임임을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어 고무적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또 염전에서 탈출한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등 염전노예 등의 근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가해자들에게 적절한 처벌이 내려지지도 않는다.

‘염전노예사건은 명백한 국가 책임’ 피켓을 든 기자회견 참가자. ⓒ에이블뉴스 DB

장애인의 삶은 완전히 풍비박산 났는데, 먹여주고 재워줬으니 고마워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항변했던 가해자인 염전업주의 말에 과연 장애인은 어떤 기분일까? 이 말을 듣는 장애인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게다가 장애인과 염전업주 간의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위계관계가 있으니 가해자의 말은 협박으로도 느껴졌을 거다. 염전업주가 잠자리를 제공해도 장애인에게 그 잠자리는 가시방석과 같았을 거다.

그러니 먹여주고 재워줬으니 감사하라는 뉘앙스의 말은 가해자가 자신의 극악무도한 잘못을 면피하는 면피용, 장애인 협박용에 불과하다. 마치 조선인을 차별하고 조선인의 삶을 황폐화시켰지만 근대화했다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일본에게 감사하라는 식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따르라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엔 부천의 W진 병원에서 한 여성이 다이어트약 중독 치료를 위해 입원했지만 2주 만에 시체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유족이 영상을 확인해보니, 이 여성은 입원 날부터 1인실에 감금과 강박을 당했다.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여성에게 안정제를 먹여 정신이 혼미해지게 만들었고, 사망한 당일엔 이 여성이 아프다고 119를 불러 달라는데, 의료기관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이 여성에겐 자·타해 위험이 없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과도한 약물 사용과 격리, 강박을 시행해 이 여성의 사망을 부추겼다. 당사자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가 없었으니 당연 인권침해이자 인권유린이다. 더구나 과도한 약물 사용으로 약물을 강제치료수단으로 사용하는 건 국제사회에선 화학적 강간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쓸 정도로 심각한 인권침해 사안으로 본다.

치료 목적의 강박이라도 주의 의무 준수하지 않을 시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국가인권위원회, 2005)에도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며 심지어는 심리사회적 장애인 당사자 등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들은 이번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다. 2016년 영등포 엔젤병원에서도 36시간 동안의 격리·강박으로 심리사회적 장애인이 사망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이런 격리·강박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건 물론 굴욕적이고 잔혹하며 비인도적인 대우에 해당하는 거기에, 그걸 금지하는 장애인권리협약 14조, 15조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거다. 그럼에도 이런 격리·강박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동반된 흥분과 공격 행동과 같은 급성기 중증 증상을 가진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기 위한 고난도의 치료방법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지난 8월 9일, 정신장애 연대단체들이 부천W진병원 앞에서 정신병원 내 사망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하는 가운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치훈 인권정책국장이 발언하는 모습 ⓒ이원무

지난 8월 9일, 정신장애 연대단체들이 부천W진병원 앞에서 정신병원 내 사망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하는 가운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치훈 인권정책국장이 발언하는 모습 ⓒ이원무
급성기 당사자와 관련한 고조완화기법, 오픈다이얼로그 등의 비강압적 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 강압적 방법으로 사람이 사망하는 비극적 상황까지 이르는 이런 강박을 고도의 치료방법이라고 호도하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입장은 참으로 언어도단이자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자·타해 위험이 없었음에도 사망에까지 이르는 강박 조치 시행한 W진 병원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치료 목적이니 인권유린해도 어쩔 수 없고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는 식의 뉘앙스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입장이 읽혀진다. 고인인 심리사회적 당사자와 유가족의 삶이 정신의료 권력에 의해 짓밟힘을 당했는데, 이런 입장은 유가족 입장에선 상당한 모욕이다. 유가족은 가해자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고소해도 분이 풀리지 않고 시원치 않을 거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강박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심한 트라우마를 겪는 등 삶에서 당한 피해가 너무도 크다.

뿐만 아니라 이런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입장에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응당 책임지려 하지 않고 회피하고픈 W진 병원의 입장을 두둔하려는 의도까지 느껴진다. 그러니 역시 식민지를 수탈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지만, 근대화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감사해하라는 걸 강요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고 이를 두둔하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뭐가 다른가? 다를 게 거의 없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근대화론의 잔재가 염전노예의 염전업주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게서 보인다. 그러기에 이들의 성찰 없고 악랄한 논리를 당사자들이 간파해 반박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가해자들이 마땅히 처벌받고, 피해 생존자들과 유족들이 인권유린 피해를 제대로 배상받는 건 물론 가해자들이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보고 싶다. 그러기를 바라며. 이번에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당사자와 유가족께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

잔인하고 분노에 가득 찬 현실을 느끼며 2024년 여름은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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